아프니까 청춘? 답없는 사회

Posted by 그루아노
2015. 8. 11. 12:48 일상이야기

대학교 2학년 때 학과 전체가 회사 탐방 프로그램으로 강남에 있는 외국계 회사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 끝날 때쯤 회사에 근무 중인 직원들에게 질의 응답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한 학생이 여성 직원에게 이 회사에 입사한 이유에 대해서 물었다. 그리고 어떤 점이 좋은가에 대해 물었다. 그 여성 직원은 웃으면서 이 건물 높은 층수에서 내려다 보는 강남 한복판을 보는 게 좋다며 여러가지 입사 이유 중 하나를 들었다. 나는 이 건물에 입사하려고 계획 했던 건 아닌데 우연히도 탐방했던 이 회사 바로 윗층에 위치해 있는 외국계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다. 회사에 입사하고 이사님이랑 첫 저녁식사를 가졌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는 중 이사님은 

“나 대학생 때는 강남 테헤란로에 있는 회사 들어가는 꿈이었는데”라며 본인의 얘기를 하셨다. 광현씨는 그렇지 않냐고 되 물으셨다. 막 들어온 신입이 솔직히 말하면 무례라고 생각해서 마지 못해“네”라고 대답했다. 

난 속으로 “강남 테헤란로에 있는 회사에 입사하는게 내 꿈은 아닌데”라며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다녔던 회사는 Fun 경영을 내세워 직원들이 행복해야 회사가 발전한다며 다른 부서들과의 모임이 잦았다. 한번은 다른 부서 직원들과의 교류와 아이디어 공유를 위해 팀을 구성했다. 모임 주제는 본인이 회사에서 개인이 원하는 일 한가지씩 말하며 토의하는 거였다. 

내가 다녔던 회사는 실적이 우수한 사원에게 외국으로 가족들과 여행 지원했다. 

회사에서 바라는 점 한가지를 말하는 내 차례가 다가왔다. 

광현씨는 회사가 지원해줬으면 하는 거 없어? 라는 질문에 회사에서 직원들에게 복지를 지원할 때 개인에게 맞겠금 지원을 해주면 안되겠냐고 의견을 냈다. 복지도 직원들마다 느끼는 행복지수가 다르다고 생각되어 만약 우수 사원이 된다면 지원 되는 금액으로 내가 원하는 프로젝트 지원금을 보장해주면 더 좋을 것 같다고 대답했다. 당시 이집트 사막에서 열리는 사하라마라톤을 언젠가는 꼭 한번 도전하고 싶었다. 만약 우수사원이 되어 가게 된다면 회사 로고를 티셔츠에 디자인해서 꼭 참여하겠다라고 자유롭게 내 생각을 말했다. 돌아온 대답은 “너가 그길 가고 싶어서 그런거 아니냐”며 과장은 딱 말을 잘랐다. 자유롭게 말하는 자리에서 내가 원하는 걸 대답했는데 돌아온 대답은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한 것마냥 내 의견은 묵살되었다. 이후 관심도 없는 스키동아리에 팀장의 압박으로 들어가게 되어 매달 10만원이 내 통장에서 빠져나갔었다. 



일개 사원의 의견은 쉽게 묵살되는 곳이 회사였다. 윗 상사에게 보고 하기 위해 토의하는 모습을 보여야 되는 곳도 회사였다. 이후 퇴사를 통보하고 다른 부서 부장님이 회식 자리에서 술을 마시고 나와 나에게 한마디 했다. 

“우리는 다 마당쇠야”

“쓸라고 하면 쓸어야지”           

그리고는 광현씨는 아이디어가 많을 것 같은데 왜 불만이나 의견을 회사 다니면서 말을 안했냐?며 퇴사가 확정 되었을 때 나에게 말했다. 이미 퇴사하기로 된 상황에서 딱히 할말이 없었다. 제가 회사가 안 맞아서 떠나는 건대요 라고 마지막 말을 남기고 회사를 떠났다. 

속으로 내가 외쳤던 말은 

“회사가 듣고 싶은 아이디어만 보고가 되잖아!!” 



친구 한 녀석은 신입으로 입사하여 만 3년을 채우고 나니 회사를 떠나야 할지 계속 다녀야 할지에 대한 걱정이 생기나 보다. 갑자기 전화가 와서는 다음 주에 무조건 사표를 낼 거라면서 상기된 목소리로 불평을 이어갔다. 보통 때처럼 입에 달고 살던 "못 해먹겠다"가 아닌 때려치우겠다니 다소 걱정이 되었다. 딱히 할 건 정해 놓은 게 없어서 다른 회사를 알아보겠다며 토익 공부를 다시 하겠다는 것이었다. 며칠 지나고 자기가 갈 만한 회사 이곳 저곳을 알아보다가 전보다 더 입사하기 힘든 취업 시장을 알고 "답도 없다"면서 계속 회사에 마지못해 다니고 있다. 

IMF 이후로 매해 단군 이래 사상 최악이라고 할 만큼 취업은 하늘의 별 따기가 된 지 오래다. 점점 절차는 까다로워지고 "또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라는 불안감으로 대학생활은 취업과의 전쟁이다. 대학생들은 요즘 대기업에 들어가는 인적성 시험을 준비하면서도 "답도 없다"라며 하소연한다. 인적성이 말 그대로 그 직무에 따른 인성이나 적성을 평가하는 시험인데 시험 문제풀이반까지 생길 정도로 인성도 문제 풀기로 만들어지는 시대이다. 한 기업의 인적성 검사를 보기 위해서 관련된 서적을 두세 권씩 풀어보고 고사장에 가는 건 기본이다. 정말 답 없는 사회에 사는 듯하다.




그런데 이런 필기시험으로 사람들의 인성까지 파악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모든 사람이 생김새가 다르듯이 재능과 적성도 모두가 다르다고 본다. 개인 모두가 눈에 보이는 특별한 능력까지는 아니더라도 한가지씩 잘하는 건 있다. 단지 본인이 모를 뿐이다. 이런 필기시험을 준비하기 전에 자기가 진정 무엇을 좋아하는지 고민하는 시간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야후 카툰의 "정답 사회"가 뒤늦게 SNS에서 많은 사람에게 공감대를 형성한 적이 있다. 사회가 원하는 대로 나이대별로 해야 할 미래가 이미 정해져 있다는 사회 풍자적인 카툰이었다. 10대에는 좋은 대학 가기, 20대에는 좋은 곳 취업하기, 30대 좋은 차와 집 마련으로 결혼하기, 40대는 돈 잘 벌어서 자식 교육 잘 시키기, 50대면 노후대비와 자식 좋은 대학 보내기, 60대면 연금 받아서 편안한 노후생활...

그리고 신문 기사를 하나 읽게 되었다. 동요대회에서 아직 8살밖에 안 된 어린 여자 어린이가 장래에 뭐가 되고 싶은지 질문을 받았다. 어린아이는 질문을 받고 "나는 외국어 유치원을 거쳐 초등학교를 졸업해서, 민족사관학교에 가서 하버드를 졸업한 후 제가 정말 정말 좋아하는 미용사가 될 것입니다"라고 답했다.



얼마나 사회에서 어린아이에게 정답을 요구했으면 자연스럽게 저런 대답을 할까? 사회가 요구하는 정답에 맞추다 보니 진정 자기가 원하는 일이 뭔지는 잘 알아맞히지 못한다. 내 주위에도 대부분이 이렇게 사회가 요구하는 방식에 맞춰 살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서 남들과 다른 행동을 하다가는 주위의 걱정스러운 시선을 감당해야 한다.

남은 하더라도 내 가족이나 주위 사람이 일반적인 일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는 것에 격한 반응을 보이는 게 우리 사회이다. 문제는 학생들이 지금까지 이러한 교육과 사회에서 기대하는 행동을 무의식적으로 해왔기 때문에 20대가 되어서도 자기 결정에 대해 남의 눈치를 보게 되고 선뜻 스스로 결정을 못 내린다.




지금 막 졸업하고 취업 준비에 지쳐서 “정말 내가 원하는 일이 뭘까?" 라는 고민 중에 있는 학교 후배와 대화를 나눴다. 그 후배는 내가 관심 있는 일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알면서 행동 안 하게 되는 내 자신이 진정 혼란스럽다"며 힘든 현실에 대해 말을 했었다. 주위 사람들의 기대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게 될 때 겪게 되는 심적 고통 때문일 것이다.

코끼리가 어렸을 때부터 쇠말뚝에 묶여 자라게 되면 그 코끼리가 어른이 되어 가느다란 밧줄에만 매여 있어도 절대로 도망가지 못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어린 시절에 겪었던 고통스러운 경험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교육 받아왔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2013년도 청룡영화제에서 박찬욱 감독이 봉준호 감독상을 대리 수상하며 남긴 말이 있다. “영화 ‘설국열차’에서 송강호가 옆을 가리키며 '이게 너무 오랫동안 닫혀있어서 벽인 줄 아는데, 사실 문이다.'라고 하는 장면을 제일 좋아한다."며 “여러분도 내년 한 해, 벽인 줄 알고 있었던 문을 꼭 찾으시길 바란다."는 인상적인 수상 소감을 남겼다.

당신이 벽이라고 생각하는 문은 있지 않은가?